전기차 에너지원은 전기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전기를 전기차에 공급하려면 차체에 배터리가 탑재돼야 합니다. 상용화된 전기차는 모두 이 배터리를 장착했는데, 대부분 2차 전지인 리튬이온배터리입니다.
최근에는 배터리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완성차 업체도 전기차에 적용할 차세대 배터리를 찾고 있습니다. 리튬이온배터리 한계 때문입니다. 리튬이온배터리 핵심 요소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입니다. 음극에서 전해질을 통해 양극으로 이온을 내보내면서 전기를 생산합니다.
문제는 이 전해질입니다. 리튬이온 이동 경로인 전해질은 현재 모두 액체 상태 소재를 활용합니다. 그래서 보통 ‘전해액’이라고 하죠. 액체는 외부 환경에 따라 변화가 심합니다. 날씨가 추우면 전해액이 얼기도 합니다. 전해질 역할을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온도가 높아지면 전해액이 기화하거나 팽창합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터지는 경우입니다. 또 외부 충격으로 배터리에서 전해액이 누출되면 폭발 혹은 화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고가 전기차에서 발생하면 어떨까요. 소형 IT 기기보다 훨씬 위험성이 큽니다. 차량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주행 중에 전해액이 누출되거나 차량 간 충돌로 리튬이온배터리에 충격이 가해진다면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안전뿐만 아닙니다. 비용 문제도 전기차의 장밋빛 미래를 발목 잡습니다. 리튬이온전지는 에너지 밀도를 300~400Wh/Kg 이상 높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곧 배터리 무게 절감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에너지 밀도를 이론상으로 계산했을 때, GM 볼트 EV에 장착된 60kWh 배터리를 200Kg 이하로 낮추는 게 힘들다는 겁니다. 전지 외 다른 부품까지 결합한 배터리 팩은 더 무겁죠. GM 볼트 EV 배터리팩 무게는 400Kg이 넘는다고 합니다. 차량 무게 25%에 해당합니다.
전고체 전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체 전해질이 분리막과 양극재 바인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소재와 부품 수, 공간이 줄어듭니다. 차량 무게를 줄여 연비(전비)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전고체 전지에 들어가는 고체 전해질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합니다. 산화물(Oxide), 황화물(Sulfide), 폴리머(Polymer), 입니다. 산화물은 리튬, 란타넘, 지르코늄, 산소 등을 기본 물질로 씁니다. 안정성은 높지만 이온 전도율은 낮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고온 열처리 공정이 꼭 필요합니다.
황화물 계열은 이온 전도율이 높고 온도 변화에 안정적입니다. 토요타, 무라타 등 일본 쪽에서 많이 개발하는 전고체 전지입니다. 다만 황(S) 때문에 수분과 산소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폴리에틸렌옥사이드(Poly Ethylene Oxide)를 기본 물질로 사용하는 폴리머는 기존 리튬 폴리머 기술과 유사해 활용성이 높습니다. 보쉬에서 폴리머 전고체 전지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여러 장점 덕에 전고체 전지는 전기차용 배터리 등에 활용될 차세대 배터리로 손꼽힙니다. 시장 성장성이 뚜렷하죠. 일본 후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전고체 전지 시장은 2035년 2조7877억엔(약 28조6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황화물 계열이 2조1200억엔(약 21조500억원), 산화물 계열이 6120억엔(약 6조700억원) 수준입니다. 황화물 계열 전고체 전지 시장의 급성장을 점쳤습니다.
이 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배터리 업체와 완성차 업체는 저마다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 뛰어듭니다. 특히 완성차 업체가 있는 국가인 독일, 일본, 중국, 한국 등을 중심으로 각축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전고체 전지 ‘춘추전국 시대’ 입니다.
독일 BMW는 지난해 12월 미국 전고체 전지 전문업체 솔리드 파워와 기술 협력을 체결했습니다. 자동차와 항공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고체 전지를 제조하는 업체입니다. BMW는 2026년 전고체 전지 기반 전기차를 출시하는 게 목표입니다.
폭스바겐은 미국 전고체 전지업체 퀀텀스케이프에 1억달러(약 1100억 원)를 투자, 지분 5%를 확보합니다. 2010년 설립된 기업이지만 전고체 전지 관련 특허를 200개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폭스바겐은 향후 퀀텀스케이프와 합작회사도 설립할 계획입니다. 2025년까지 전고체 전지 양산라인을 구축하고 생산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일본은 토요타가 치고 나갑니다. 현재 1조5000억엔(14조8900억원)을 투자, 전고체 전지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있습니다. 2022년 전고체 전지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하는 게 목표입니다. 르노·닛산·미쓰비시 동맹은 올해 초 10억달러(1조1200억원) 규모 벤처 투자 펀드를 조성했습니다. 미국 전고체 전지 스타트업 아이오닉 머티리얼에 투자했습니다. 2025년 전고체 전지 차량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도 전고체 전지 주도권 확보를 위한 지원 사격이 한창입니다.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업체 간 전고체 전지 개발 협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나서 이 기술 개발 조직(리튬이온전지재료 평가연구센터)에 16억엔(약 16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국제전기표준회의(IEC) 등 국제 규격 취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고체 전지 국제 표준화에 일본 입김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입니다.